
책을 처음 보았을 때 연보라색 테두리가 마음에 들었다. 영화로 먼저 만난 작품이라 원작을 읽고 실망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도 있었다. 하지만 읽기로 결정했다. 단편집이니까 ‘멋진 하루’만 빼고 읽어도 무방했다.
감동이나 깨달음이나 위로를 이 소설에서 얻기 바란다면 나는 책을 덮고 다른 책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이 책에는 그런 것들이 없다. 전혀 없다고 볼 수 없지만 ‘무언가’ 얻기 위해 이 책을 펼친다면 그는 분명 실망할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이 책을 펼칠 때만 책은 진가를 발휘한다. 책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없다. 책 속에 놓인 주인공의 상황이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할지라도 독자의 눈을 확 끌어당기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 책은 재밌다. 소소한 일상이 담겨 있다. 해피엔딩이나 성공만 있는 것도 아니다. 좌절과 안타까움도 있다. 다른 소설과 달리 죽어가던 사람이 갑자기 눈을 뜬다거나 어려운 부탁을 들어준다거나 하는 일이 없다. 죽어가던 사람은 예정대로 죽고 어려운 부탁은 역시 어려워서 들어주지 못한다. 나는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우리네 삶이 그렇다고 생각했다. 작가는 절대 과장하지 않았다.
작가의 시선이 너무 평범하지 않나,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대부분 소설 속의 인물들은 독특한 특징을 지닌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평범한 사람이 많다. 착한 사람이 나쁜 사람보다 훨씬 많다. 성실한 사람이 많다. 우리가 하는 걱정은 큰 걱정이 아니다. 일반인 중에 국가의 미래나 우주전쟁에 대해 심각하게 걱정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밖에서는 주식이나 경제로 골머리를 앓아도 집에 돌아오면 뭘 먹을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지 고민하는 게 전부이다. “멋진 하루”는 그런 우리의 일상을 그려냈다. 친정 식구와 사이가 좋지 않은 주부는 여전히 관계가 나아지지 않고 불륜을 저지른 상사는 불륜이 알려질까 두려워하고 회사에서 잘린 여자는 소설이 끝날 때까지 다른 직업을 얻지 못한다.
나는 행복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동화는 ‘왕자와 공주는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에서 끝이 나지만 우리의 인생은 그렇지 못하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면 졸업하기도 전에 취업에 골머리를 앓고 결혼을 결정하는 순간 살 집을 구하고 살림살이를 사러 다녀야 한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결과가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면 왕자와 공주가 결혼하는 순간 인생이 끝나야 한다. 결혼식을 올리자마자 천국으로 가야 한다. 현실 속 부부는 결혼식을 올리고 나면 신혼여행을 갔다 온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면 다시 일상이다. 신혼생활도 처음엔 즐겁지만 계속되면 상대가 지겨워지고 때론 지지고 볶으면서 심할 땐 이 사람과 떨어져 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 것이다. 그래서 과정이 중요하다는 거다. 운이 좋으면 자신의 이상형을 만나 결혼에 골인할 수 있지만 결혼생활까지 그 운이 계속 따라줄까. 가끔 찾아오는 운은 행복이 될 수 있지만 그 운이 계속 유지되기 위한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일상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는 언젠가 찾아올 행운을 유지하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열심히 살다보면 운이 저절로 찾아올지 모르지만, 나는 언젠가 찾아올 운을 오래도록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행운이 계속 된다면, 그게 곧 행복일 테니까.
내게는 아무 할 일 없이 이불 속에 있는 휴일이 ‘멋진 하루’이다. ‘멋진 하루’의 의미는 각자 다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놀이공원에서 놀거나 멋진 휴양지에서 쉬는 날이 멋진 하루가 될 수 있다. 앞으로 살아갈 날 중 내게 ‘멋진 하루’가 더 많이 찾아오기를 바란다. 다른 이들에게도 많이 찾아갔으면 좋겠다. 우선 오늘이 당신과 나에게 ‘멋진 하루’였으면 좋겠다.




덧글
흑태자 2011/02/14 11:09 #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책중에 하나입니다. 물론 하정우씨와 전도연씨가 나온 영화도 훌륭했구요 :D
단단한 무덤 2011/02/14 14:22 #
영화도 굿, 원작도 굿이죠 ^^